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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팀 조회수 1810 작성일 2019-09-02 오전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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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청구권 협정은 무엇을 다루었나 / 조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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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청구권 협정은 무엇을 다루었나

조 경 임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뉴스에서도 모임에서도 온통 한일관계가 화제이다. 일본회사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어지는 아베 정부의 경제 제재. 대체로 후자가 문제라고들 하지만,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판결의 쟁점이 무언지, 필자의 견해는 어떠한지 묻는 친지들의 열정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판결문을 찾아 읽어 보았다. 뉴스며 칼럼에서 수도 없이 접하여 판결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낯선 논점이 많다.

그래도 핵심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다루어진 청구권의 정체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 당시, 한국과 일본은 협정을 통해 ‘양국(국민)의 재산, 권리,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이후 ‘양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강제 징용 노동자였던 원고의 ‘위자료청구권’ - 구체적으로는,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청구권’ (장황해 보이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청구권이고, 해당 불법행위는 ‘일본 정부의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되었음을 전제로 한다) - 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다루어졌는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어 더 이상 문제삼을 수 없는지,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나뉘었다. 다수의견은 이러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 협정 대상이 아니며, 여전히 청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별개의견과 반대의견은 포함된다고 해석하지만, 완전히 해결되어 더 이상 문제 삼을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취한다.

 

대법원 판결이 청구권협정을 뒤엎었다면, 일본으로서는 당연히 분개할 법하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청구권 협정에서 사용되고 있는 ‘청구권’의 개념이다. 일본 법학에서는 청구권이라는 용어를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여 왔는데, 넓은 의미로는 –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 “사람에 대하여 무엇을 요구(청구)하는 권리”를 총칭하는 개념이다(좁은 의미로는 ‘권능으로서의 이행청구력’을 의미한다). 어떤 이가 타인에게 작위·부작위를 청구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승인된(권리로 인정된) 관계일 때, 그에게 “청구권”이 인정된다고 말한다(奥田昌道,『請求權槪念の生成と展開』). 주목할 점은 ‘청구권’은, ‘법에 의해 정당화되는’, ‘법적으로 승인된’ 관계에서 비로소 등장하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이러한 인식은 청구권 협정 2조에 관한 합의의사록에도 잘 드러난다.『(a) “재산, 권리, 이익”은 ‘법률상의 근거’에 의거하여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즉 청구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일본은 법률상 근거를 갖는 실체적 권리에 기초한 청구권을 전제하였을 것이다. (“양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에 대하여 이후 주장할 수 없다”는 표현은, 국가와 국가 간의 협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필부 간의 약속을 담은 각서도 아닌데, 발생 자체가 다투어져 협의 대상이 되지 못한 청구권마저도 이후 주장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그렇게 해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시 논점으로 돌아오면, 그래서 한일협정 당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협의 대상이었는가. 협의대상이 아니었다는 다수의견, 협의되었다는 별개의견과 반대의견이 제시하는 근거들 모두 그럴 법하다. 당시 상황에 관한 역사서적들을 뒤적이다 보니, 의외로 – 적어도 협의대상에 관해서는 - 역사적 평가가 대체로 일치한다. 법무부장관 후보자인 조국교수가 거친 표현을 사용하며 비판하여 장안의 화제가 된『반일 종족주의』(이영훈 외 著) 역시 다르지 않다. 1951년 체결된 연합국과 일본 간 평화조약(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전후처리를 위한 조약이었다. 한국은 전승국이 아니었고, 전쟁 피해국 지위도 인정받지 못했다. 일본에 대한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강화조약 14조)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일본에서 분리된 지역(한국, 북한, 대만 등)으로 분류된 국가에게는 ‘재산상 채권·채무관계’에 관하여 별도 협의로 해결하도록 하였고(강화조약 4조), 그 결과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는, 강화조약에 근거한, 일본의 강력한 의지 하에 우리 국민의 전쟁 피해나 고통에 관한 배상에 관해서는 논의될 수 없었다. 청구권 협정 그 어디에도 ‘배상’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청구권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법원 다수의견이 판단한 대로, 문제된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의 대상이 아니어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거나, 이후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할 수 없었다면 - 기타 논점에 관한 법리적 판단에 대한 비판은 논외로 하더라도 - 대법원 판결이 한일협정을 위배하였다는 일각의 비난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다만 우리나라를 전쟁피해국으로 분류하지 않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쉬이 인정치 않는 국제질서에, 우리가 어느 정도 기속되거나 순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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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3 호 | 발행일 2019년 08월 01일
속죄기부제도 / 조균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