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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팀 조회수 3793 작성일 2017-09-01 오후 2: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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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이전, 개헌은 필수가 아니다 / 윤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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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이전, 개헌은 필수가 아니다

윤 영 미

편집위원,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세종시로 수도를 이전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현재 50개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33개(66%)는 세종과 대전 등에 있어 서울과 과천에 있는 기관 17개(34%)의 2배에 이르고, 앞으로도 더 많은 기관이 이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그러나 국회가 서울에 있는 관계로 세종시로 이전한 정부부처 공무원들이 길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2016년 6월에는 국회의원 38명이 세종시에 국회분원을 설치하자는 법안을 발의하여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그런가 하면 국회 사무처는 금년 7월 행정부의 세종시 이전에 따른 각 부처 공무원의 업무 공간 확보 및 기자회견장과 기자실 이전을 위해 국회 후생관 자리에 지상 4층, 지하 1층, 연면적 2만4천732㎡의 새 건물을 짓는 공사를 시작했다. 다른 이유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도 검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회의장실은 최근 ‘국회 휴먼네트워크’에 등록된 각계 전문가 1만6841명(응답률 20.2%)을 대상으로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등에 대한 이메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개헌을 통해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데 찬성하는 의견이 64.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국회와 대통령 집무실의 세종시 이전 여부는 중대사이니만큼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주요 행정부처와 국회 및 대통령 집무실이 원거리로 떨어져 있음으로 인해 많은 낭비와 비효율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수도권 과밀화로 인해 시민들이 부담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결국 세종시로 옮길 것이라면 국회의 시설을 증설하거나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길 것이 아니라 세종시로 바로 옮기는 것이 나을 것이다. 두 기관의 세종시 이전을 가로막는 법적 장애물은 헌법재판소의 2004년 결정(2004헌마554)에서 나온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관습헌법’이라는 법리이다. 헌법재판소는 위 결정에서, ‘수도’를 “헌법기관의 소재지, 특히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과 민주주의적 통치원리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의회의 소재지”라고 정의하면서,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관습헌법으로서 헌법개정이 아닌 법률만으로 이전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국회와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은 개헌사항임을 전제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헌법을 개정한다는 일정이 제시되어 있지만, 헌법을 전반적으로 개정하기에는 너무 준비 기간이 짧다. 사견이지만, 정부형태에 대해 뚜렷한 대안도 없고 선거제도, 정당제도 등 법률차원에서 개선할 과제들이 많은데, 그렇게 서둘러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적이고, 개헌안에 대해 의견이 모아질지도 상당히 의문이다. 그런데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수도 이전은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헌법재판소의 위 결정은 헌법학계에서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판례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위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의 성립요건으로 지속적 관행의 존재와 더불어 그 관행이 헌법관습으로서 국민들의 승인 내지 확신 또는 폭넓은 컨센서스를 얻어 국민이 강제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지속적 관행의 존재와 더불어 사회구성원의 법적 확신은 일반적으로 관습법의 성립 및 존속요건으로 인정되는 것이고 그러한 법적 확신이 없어지면 관습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데, 이러한 일반적 요건이 관습헌법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한 것이다. 즉 법적 확신의 소멸로 관습헌법이 소멸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다만 위 결정 당시에는 그 ‘사멸’이 확인되지 않으므로 헌법개정이 아닌 법률로는 이전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위 결정에서는 소멸사실을 인정하는 방법으로 “국민투표 등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 고려될 여지도 있을 것”이라고 하였지만, 국민투표는 예로 제시되었을 뿐이다. 민사사건에서 민사관습법의 존재가 다투어졌을 때 법원은 그 존재 또는 소멸여부를 확인하여야 하는데, 국민투표는 필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수도 이전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토하고 공론화한 다음 신뢰할만한 여론조사로 소멸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의 여론조사결과에 의하면 세종시로 수도를 이전하는 데 대해 찬성하는 의견과 반대하는 의견은 반반 정도라고 한다. 위 헌법재판소 결정 당시에는 서울이 수도여야 한다는 국민들의 법적 확신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상당히 흔들리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론조사만으로 법적 확신의 소멸 여부를 확인하는 데 대해 여전히 정치적 부담이 크다면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헌법개정 국민투표가 아닌 헌법 제72조의 정책국민투표라도 상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