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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팀 조회수 4274 작성일 2017-12-15 오후 6: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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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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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이 상 원

편집위원,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아니? 저놈잇!” 저만큼 앞에서 감히 내가 운전하는 앞으로 끼어들려고 한다. 절대로 양보 못하지. 내가 먼저 간 뒤에 끼어들든가 말든가. 도로는 전쟁터다. 갈수록 전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내가 이익을 챙기지 않으면 곧 다른 이가 이익을 챙기고 나는 손실의 수렁으로 빠져든다. 간신히 관악에 도착하여 보니 이게 또 웬일인가. 신성한 배움의 전당에 형형색색 등산복 차림으로 교정을 누비는 자들은? 관악산의 기운을 나라의 백년대계에 쏟아 부어야 하는데 너희들이 다 무어냐. 관악산에 등산을 금지했으면 좋겠다. 아, 물론 관악에 근무하는 나는 빼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냐고?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다. 다른 데서 놀든가 말든가. 물론 나는 중요하니 옆 동네 산에도 자유롭게 다닐 특권을 누려야 한다. 그 동네 사람이 못 오게 한다면? 그건 안 될 일이다. 그게 자기가 산 땅인가. “아니, 저놈이?” 차선을 바꾸려고 여러 번 시도하는데 멀찌감치 뒤에 있다가도 깜박이만 켜면 광속으로 달려든다, 절대 안 끼워주려고.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군.

바야흐로 개혁의 시대이다.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양지 뒤로 부의 편중과 가치의 대립이라는 음지가 생겼고 그 어둠은 점점 더 짙어졌다. 어둠이 짙을수록 부정의와 혼란의 그림자가 우리들 마음속에 더욱 암울하게 자리 잡았다. 급기야 그 그림자는 클레이사격의 표적과도 같이 적폐를 날려 올렸다. 비리와 불공정으로 얼룩진 국가권력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고 가장 정의로워야 할 검찰은 개혁대상 1호로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의 의심을 받고 권력을 겨눌 수 있는 칼을 회수당할 압박을 받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독점한 수사권력을 부당하게 휘둘렀다는 비난을 받고 수사권력의 일부를 베어내어야 할 궁지에 몰려 있다. 공수처의 영장이 제시되었고 수사권 조정의 방이 나붙었다. 여기저기 개혁의 깃발이 위원회로 내걸렸다. 이제 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제도화를 위해 달려갈 것이다. 제도의 변화는 그 제도와 관련된 사람들과 기관들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제도화를 향한 경주 속에 각종 기관과 집단이 뛰어들어 각자의 이익이 극대화되도록 머리를 들이대고 충돌할 것이다. 때론 그럴 듯한

말로 분식을 하기도 하고 때론 솔직한 민낯을 붉히기도 하면서. 다른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직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면 된다. 이건 바람직한 일이다. 경주에 참여하는 각 단위들이 각자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면 보이지 않는 손은 그 충돌을 조정하여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복잡한 경제도 조율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그 정도 일을 조정하지 못할까. 일일이 사람이 손으로 데려다 주지 않아도 금속이온이 알아서 도금할 물체에 고르게 달라붙는 전기도금처럼 그저 각자의 이익에 충실하면 훌륭한 제도가 탄생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험은 제도화의 경주에서 이해관계인들의 무한 경쟁을 합리적으로 이끄는 보이지 않는 손을 잘 발견하지 못하였다. 하긴 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도 기대와 달리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된 바이다. 전기도금의 이온과 같은 창조주의 작품은 몰라도 경제와 같은 인간의 작품은 불합리한 인간의 욕심으로 인하여 보이지 않는 손에 오염을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하물며 욕심과 아집이 적나라하게 충돌하는 권력을 둘러싼 제도적 문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해당사자들은 각자 자신의 주장이 정의로운 주장이라고 주장한다. 정의가 여러 개인가. 정의가 모순된 것인가. 모두 진정으로 정의라고 주장하는데 결론은 서로 정반대다. 너의 정의와 나의 정의가 너무나도 멀다. 당사자들끼리 해결하지 못하니 아예 당사자들을 배제하고 제3자가 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동안 숱한 자성의 기회를 모두 날려버린 자들이니 더 이상 스스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고귀한 정의를 세워줄 테니 그대로 따르라. 그런데, 그런데... 만약 제3자가 세워준 그 정의마저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정의라면? 광화문 거리에서 꽹과리를 치는 미치광이를 만들거나 또는 골방에 숨어서 거부의 몸짓을 흔들어대는 겁쟁이를 만들고는 근정전 앞에서 보이는 박수소리에 행복한 단꿈을 꿀 것인가.

혁명은 편견을 먹고 힘찬 날갯짓을 한다. 그러나 갑돌이와 갑순이가 살아가는 우리네 일반 삶에는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있고, 현자도 어리석은 사람도 있으며, 동인도 있고 서인도 있다. 나는 너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너도 나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는구나. 내게 이로운 것이 네게는 손해를 가져오는구나. 우리 기관이 정의로우면 너희 기관도 정의로울 수 있구나. 내 주장만 옳은 줄 알았더니 네 주장도 옳을 수 있구나. 그러고 보니 너나 나나 모두 종에 지나지 않거늘 그 동안 주인은 까맣게 잊고 나만 생각하였구나. 나를 버리고 너를 생각하고, 나를 버리고 국민을 생각하면, 그럼 어쩌면 너와 나의 정의가 우리의 정의로 합쳐져 주인님이 흡족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등산금지법을 생각할 때 이제 나는 관악에 살지 않고 적어도 도로교통법을 생각할 때 이제 나는 옆 차선에 있다. 검찰개혁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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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69 호 | 발행일 2017년 11월 01일
법원·검찰 인사제도의 문제점과 개혁방안 / 이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