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서비스

닫기

대한변호사협회는 언제나 국민곁에 있습니다.

인권과 정의

월간으로 발행되는 인권과 정의는 협회의 공고 및
소식을 전하고, 법률관련 논문을 제공합니다.

선택글 상세보기
작성자 홍보팀 조회수 3354 작성일 2018-06-01 오후 3:18:00
제목

법률가가 공부하는 이유 / 박성호

첨부파일

법률가가 공부하는 이유

박 성 호

편집위원,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법학박사

‘마지막 냉전의 섬 한반도’에 평화와 희망의 문이 열리는가?

남북 정상 회담이 열린 데 이어 북미 정상 회담의 개최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바야흐로 세상은 격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눈앞에서 요동하는 현상에 사로잡혀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말고 사리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공부하는 마음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는 “진정한 학자란 지식의 근원적인 욕구와 관련된 철학적 인식과, 자신이 속한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아는 역사적 인식을 얻기 위해 자신의 생을 헌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땅의 법률가라면 모름지기 식민지시대 일제의 지배논리, 독재시대의 분단논리, 강대국의 냉전논리가 만들어낸 허상들을 거둬낼 수 있는 ‘내면의 성찰’과 ‘역사적 안목’을 길러야 마땅하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을 당시 세계정세는 급격한 변동의 한 가운데 있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은 1911년 망국의 한을 품고 일본에 건너가 고학(苦學)으로 법학공부를 시작하였다.

가인 선생은 독립투사들을 변호하기 위해서는 법률을 전공해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법학공부에 매진하였다고 한다. 학부 때는 강의 시간을 제하고도 매일 8∼9시간 공부를 하였고, 학부를 졸업한 뒤에는 변호사 시험을 염두에 두고 지금의 대학원 석사과정에 해당하는 법학 연구과에 진학하여 하루에 15시간 이상 법학공부에 진력하였다는 것이다(김학준, 「가인 김병로 평전」, 민음사, 1988년 참조).

 

 

흔히 공부라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또 공부를 함에 있어 ‘노력’을 강조하기 위해 “열정이란 재능을 가리킨다. 열정 없는 재능은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를 의식하면서 의지를 가지고 실천해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 역사에 위대한 법률가로서 이름을 남긴 가인 선생의 공부에 대한 열정을 접하노라면, 무릇 공부란 성실하고 정직하게 해야 하는 것이고 또 어떤 성취에도 ‘비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설령 당면한 여러 조건들이 미흡하더라도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이면 어느 순간 길이 열린다는 희망을 가지고 거듭해서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노력하지 않으면 희망이 생기지 않는다. 희망이란 남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내부로부터 싹 트는 것이다.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대지 위에 난 길과 같다. 애초부터 땅 위에 길이란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그 곳이 길이 되기 때문이다” 루쉰(魯迅)의 말이다. 희망을 품고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잡초가 우거진 곳조차 사람들의 왕래로 번잡한 대로로 변하기 마련이다. 루쉰의 말은 법률가에게 있어 공부라는 것이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공부가 희망의 근거라는 것은 법학자를 포함한 법률가의 전문성 구축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다. 법률가 그 중에서도 변호사라면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우수한 판검사라도 이룰 수 없는 영역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변호사는 최신의 재판실무나 수사정보에 밝은 판사나 검사에게 무시당하기 쉽다.

그런데 좀 더 생각을 발전시켜보면, 법률가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전문 영역의 개척에 그치지 않는다. 법률가가 공부를 해야 하는 근본 이유는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히고 이런저런 세속의 편견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생각 속에 무엇이든 편견이 뿌리를 내리도록 방치하면 그 편견은 불원간에 혐오를 낳기 마련이다.

최근 언론에 오르내리는 법률가 출신 정치인들의 이런저런 발언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편견과 혐오가 그득하다. ‘문제적 정치인’ 중에는 사람 자체에 문제가 많은 경우도 있지만 실상은 공부 부족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률가에게 있어 공부라는 것은 단순히 지식습득이나 전문성 추구의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공부든지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민주적이고 공정한 사회를 구축하는 논의의 마당으로 연결되어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점에서 사회적·정치적 진보에 기여하지 못하는 공부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이전,다음글

이전글

다음글

제 473 호 | 발행일 2018년 05월 01일
낙태 문제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 / 김광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