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서비스

닫기

대한변호사협회는 언제나 국민곁에 있습니다.

인권과 정의

월간으로 발행되는 인권과 정의는 협회의 공고 및
소식을 전하고, 법률관련 논문을 제공합니다.

선택글 상세보기
작성자 홍보팀 조회수 2975 작성일 2018-12-04 오후 2:16:00
제목

사적자치(私的自治)를 다시 생각한다 / 송호영

첨부파일

사적자치(私的自治)를 다시 생각한다

송 호 영

편집위원,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필자가 법대에 입학한 첫 학기에 「법학개론」 수업을 교양필수 과목으로 듣게 되었다. 필자는 헌법, 민법, 형법, 소송법, 법철학 등 다양한 법학에 대해 모듬요리처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지만, 그 기대는 수업 첫 시간부터 깨지고 말았다. 그 수업을 담당하신 교수님은 첫 시간부터 ‘근대민법의 기본원리’에 대해 설명하셨다. 그때부터 ‘사적자치의 원칙’, ‘사유재산권존중의 원칙’, ‘과실책임주의’에 관한 강의가 중간고사 전까지 이어졌다. 당연히 중간고사 문제는 ‘근대민법의 기본원리를 논하라’였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이제는 다양한 법학분야에 대해 맛을 좀 보겠구나 기대했었는데, 그 기대는 또 무너졌다. 중간고사 이후부터는 근대민법의 기본원리가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수정’되었는지에 대한 강의가 기말고사 때까지 이어졌다. 당연히 기말고사 문제는 ‘근대민법 기본원리의 수정에 대해 논하라’였다. 법학개론을 왜 그렇게 가르치셨을까? 마지막 수업시간에 그 교수님께서는 어차피 헌법, 민법, 형법 등 개별과목은 앞으로 전공교수님들로부터 상세히 배우게 될 것이기에(참고로 그 교수님의 전공은 상법이었다), 법학을 처음 공부하면서 민법의 기본원리라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 필자는 민법총칙 교과서의 앞부분에 몇 페이지밖에 기술되어 있지 않는, 더군다나 시험에도 잘 나오지도 않는 부분을 한 학기 내내 강의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필자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민법을 가르치면서 그때 그 교수님의 강의만큼 머릿속에 많이 남아있는 강의는 없다. 아니 지금은 그때의 가르침에 대해 감사할 뿐이다. 요즘 로스쿨에서는 학생들이 변호사시험에 출제되지 않을 법한 내용은 아예 배우려 하지도 않고 교수들도 학생들의 수요에 맞춰 시험에 출제될 내용들만 골라 가르치고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민법 수업에서 학생들로부터 욕먹기를 각오하고 근대민법의 기본원리와 그 수정원리에 대해 제법 길게 강의를 한다. 왜냐하면 역사가들에게는 어떠한 사관(史觀)을 갖느냐에 따라 역사의 해석이 달라지듯이, 민법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적 분쟁에 대한 해결의 방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법학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균형 잡힌 법률관을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근대민법을 구성하는 세 가지의 기본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적자치(Privatautonomie)이다. 특히 사적자치는 계약법에 있어서는 계약의 자유(Vertragsfreiheit)로 표현된다. 말 그대로 사적자치는 당사자가 자기결정, 자기책임 및 자기지배의 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법률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나 공권력은 함부로 사적 영역에 개입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적자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특히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인성론(人性論)에 터 잡고 있다. 사적자치의 원칙이 근대 민법전의 기본원리로 채택됨으로써 당시의 경제상황과 맞물려 자본주의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지만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사적자치라는 명분아래 자본이 사람을 지배하는 병폐가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에 각국은 근대민법을 떠받들던 기본원리들을 수정하게 된다. 계약자유로 대변되던 사적자치에 있어서도 계약의 ’자유’보다 계약의 ‘공정’이 강조되어야 했다. 그리하여 형식상 계약의 자유라는 명분아래 신음하는 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의 특별법들이 제정되어 사적자치를 수정하게 된다. 그런데 필자가 수업시간에 강조하는 것은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사적자치는 예외적으로 필요한 경우에 ‘수정’되는데 그칠 뿐, 민법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여전히 사적자치라는 점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현실을 보면, 과연 사적자치가 존중받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우리 사회를 마치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양분하여 진영의 논리에 따라 사적자치의 ‘원칙’ 아니면 사적자치의 ‘수정’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예외없는 원칙없다(Keine Regel ohne Ausnahme)”라는 법언(法彦)이 있다고 해서 예외가 원칙을 압도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예외가 원칙을 증명한다(Ausnahmen bestätigen die Regel)”는 법언처럼 예외는 원칙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데 조력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사적자치도 당연히 그러하여야 한다. 사적자치의 수정은 사적자치의 원칙에 대한 예외로써, 사적자치를 존중하는데 조력하여야 한다. 개인의 자율성을 처음부터 의심하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입하게 되면 당장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르나, 자본주의의 순기능조차 근원적으로 오작동으로 이끌 위험이 크다. 청와대의 정책실장이 “시장은 정부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시장의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고, 정부는 감당할 수 없는 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인들을 불러놓고 “투자를 늘려라”, “상생기금을 내 놓아라”라고 압박하는 것은 재산처분의 자유를 내용으로 하는 사적자치의 ‘수정’과는 전혀 거리가 먼 공권력의 횡포일 뿐이다. 국회도 표(票)퓰리즘을 좇아 마치 경제적 약자를 위한 착한 입법인 양 포장하면서 사적자치를 무시한 법안들을 남발하고 있다. 수많은 특별법들이 쌓이다보니 요즘은 무엇이 기본법이고 무엇이 특별법인지 조차 알기 힘든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우리 사회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원칙과 예외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사적자치는 그 기본이 되는 법원리이다.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사적자치의 수정은 사적자치를 존중하면서도 예외적이고 특별한 상황에서만 인정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