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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팀 조회수 1369 작성일 2019-05-03 오전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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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법제도의 개혁 논의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 / 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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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법제도의 개혁 논의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

강 수 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에 관한 논의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사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래 우리 형사절차는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변화의 논의는 한때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기능하기도 하였지만, 1995년 제8차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 개혁의 방향은 헌법 제12조 제1항의 적법절차 원칙을 형사소송법에 구현하는 것이었다. 탈법적 신체구속 관행을 없애기 위한 체포제도의 도입, 법관이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를 직접 심문하는 영장실질심사제도,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의 명문화, 그리고 국민참여재판과 공판중심제도의 확립 등은 적법절차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형사사법제도 개혁의 대표적 산물이다.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는 표면적으로는 검찰개혁, 수사기관의 권한 배분과 갈등 조정을 목표로 하는 단순한 제도개혁 논의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형사사법제도의 개혁에 관한 것이다. 논의의 구체적 내용을 들여다보면 수사종결권의 행사 주체,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의 증거능력, 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주체의 범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자의 범위 등 국민의 기본권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제도적 변화들이 포함되어 있고, 형사소송법, 더 나아가 헌법의 개정까지도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 역시 수사권 조정에 대하여 “국민의 관점에서” 수사기관의 역할을 재조정하고, 수사권이 “국민을 위해” 민주적이고 효율적으로 행사하도록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의 논쟁 과정에서 적법절차 원칙의 구현, “국민을 위한” 개혁이라는 형사사법제도 개혁의 기본 방향은 잊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과 동떨어진 권력기관의 권한 분배, 적법절차 원칙이 실종된 국가권력의 행사는 결코 바람직한 개혁 방향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의 바람 속에서 지켜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형사절차는 가장 나중에 개입하여야 하고(보충성),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하며(비례성), 예측 가능하고 명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죄형법정주의)는 기본 명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형사재판에서 무죄의 추정과 불구속 재판 원칙이 후퇴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각종 정보의 홍수 속에 형사절차가 개입해야 하는 영역과 그 밖의 절차로 해결되어야 하는 영역의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원칙에 대한 잘못된 예외를 관행화해왔던 국가권력의 행사에 대하여 냉철하고도 객관적인 심판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많다. 과거 어느 때보다 형사절차를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앞세우게 되었고, 무죄의 추정보다는 엄벌에 대한 공개적 확신을, 불구속 재판의 원칙보다는 당장의 응보를 위한 구속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때마침 형사사법제도 개혁 논의의 방향이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로 향하게 되었다. 수사권 조정의 주요 내용은 수사기관 간의 “상호 대등한 협력관계”를 수립하는 것인데, 정부안을 비롯한 현재의 논의 내용을 살펴보면 경찰은 독자적인 수사권과 수사 종결권 등 과거보다 더 큰 수사권을 가지게 된 반면, 이에 대응한 새로운 사법적 통제방안, 인권옹호장치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 공수처라는 또 하나의 수사기관까지 보태어지면, 형사절차 중 국민의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가장 큰 수사단계에서의 국가권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는 모양새가 되었다.

통제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사되는 국가권력, 무엇보다 수사권력은 결코 선(善)한 것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수사기관 간의 권한 배분이 이루어지거나, 새로운 수사기관이 설치될 때에는 반드시 이에 대한 사법적 통제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장치가 명백하고 확실하게 수반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에 관한 현재의 논의 과정에서 이러한 통제장치에 대한 고민들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지금까지 적법절차 원칙의 구현을 위해 힘들게 지켜 온 우리 형사사법제도의 발전 방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염려되는 점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것이다. 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설치에 관한 논의는 실상 검찰개혁을 향한 국민적 열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검찰개혁을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 중 하나인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등으로 제한하는 것만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가 우려될 뿐이다.

우리 형사사법제도는 멈추지 않고 개혁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과거를 고집해서는 변화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변화된 제도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조망 없이는 올바른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

수사, 수사기관, 수사권력은 형사사법제도 개혁에 있어서 국민의 기본권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만큼 기본권에 대한 침해 가능성이 큰 영역이다. 사법적 통제와 인권옹호장치에 관한 고민 없이 수사기관 간의 권한 조정에만 개혁의 초점을 맞추다 보면,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적법절차 원칙의 구현이라는 형사사법제도의 기본 방향은 후퇴할 위험이 매우 크다. 현재의 논의가 과연 국민을 위한 형사사법개혁으로서 평가될 수 있을 것인가?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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