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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팀 조회수 4471 작성일 2016-09-02 오후 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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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발언의 규제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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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발언의 규제 / 박성호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위원

지금 우리 사회에는 혐오 발언이 넘쳐나고 있다. 혐오 발언(혹은 혐오 표현)이란 “인종, 종교, 젠더, 이념, 지역, 연령, 장애, 성적 지향 등을 근거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선동적, 모욕적, 조롱하고 위협하는 표현”을 말한다. ‘일베’와 같은 문제적 사이트는 물론이고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신문기사의 댓글만 들춰보아도 도처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 사회의 통합을 해칠 정도로 ‘차별과 배제’ 그리고 편견을 담은 혐오 발언이 만연하고 있다. 구체적인 유형과 그 내역을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이다.

혐오 발언은 편견을 확산시켜 고정관념을 만들고 결국 폭력으로 이어지게 할 위험성이 크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란 개념을 제시하면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악행은 정신병자나 광신자가 저지른 것이 아니라 체제에 순응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편견에 맹목하는 윤리의 결핍 때문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윤리란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이 쓴 <시적 정의(poetic justice)>에 따르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을 뜻한다. 누스바움은 위 책에서 ‘분별 있는 관찰자’의 시각을 제시한다. ‘분별 있는 관찰자’란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사태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능력과 함께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들에 대한 깊은 공감능력을 동시에 가진 제3자를 뜻한다.

모든 차별적 표현은 대중매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장 그 뿌리가 깊고 오래된 성차별적 표현의 근절을 위해 1995년 12월에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 제28조에서 여성정책 기본시책의 하나로 ‘대중매체에서의 성차별 개선’에 관하여 규정한 바 있다. 동법은 2014년 5월 28일 법률 제12698호로 전부 개정될 때 법률명칭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변경되어 2015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양성평등기본법 제37조에서는 더욱 체계적으로 ‘대중매체에서의 성차별 개선’ 등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또한 현재 ‘방송법’,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등에서 방송과 정기간행물 및 인터넷신문에서의 성차별을 금지하는 규정을 직접 두고 있거나 간접적으로 그러한 취지를 도출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성차별의 금지’를 포괄하는 남녀평등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이다. 남녀평등(또는 성평등)이란 평등권에 기초하여 남성 또는 여성이 성을 이유로 하는 차별과 폭력 및 소외와 편견을 받지 않고 인간의 존엄과 권리 및 자유를 동등하게 보장받는 한편, 개성과 성별에 따른 고유한 특성을 존중받으며 가정과 사회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책임을 분담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은 세계인권대회(1993년 6월 14일-25일)의 ‘비엔나선언’을 계기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개념에 의하면 남녀평등은 단순히 남녀차별의 반대개념이 아니다. 여기에는 성을 이유로 하는 차별뿐 아니라 폭력, 소외와 편견의 문제가 복합되어 있고, 모성기능과 같은 여성의 고유한 특성에 대한 존중이 요구되고 있으며, 권리만이 아니라 책임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김엘림,「남녀평등과 법」, 2003, 14면).

남녀평등과 관련하여 근래 우리 사회의 문제점으로 자주 지적되는 것이 ‘여성 혐오 엔터테인먼트’이다. 오랜 세월 우리의 대중문화 영역에서 여성 비하나 혐오의 정서는 진부할 만큼 관습적으로 사용되어왔다. 우리 문화산업 제작 현장의 교양수준을 그대로 노출시킨 매우 부끄러운 모습이다. 인간의 존엄과 인권에 관한 본질적 쟁점임에도 그간 이에 관한 본격적 비판과 반성이 없었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녀평등을 해치는 성차별 발언 뿐 아니라 이념과 지역, 종교 등 여러 혐오 발언의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 종합편성채널을 중심으로 특정집단을 악의적으로 헐뜯거나 비방, 명예훼손 하는 혐오 표현의 행태도 나날이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혐오 표현은 우리 사회의 민주적 여론 형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큰 방해물이다.

소설가 정찬은 어느 시론에서 누스바움의 관점을 빌려 한 공동체의 건강상태를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라고 쓴 바 있다(정찬, “국가권력의 근거에 대한 물음”,「한겨레」, 2016년 1월 1일자).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직시하는 헌법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사람이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 교양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찬은 세월호 사고 이후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아름다운 이들을 많이 보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 아름다운 이들과 피해자들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텅 빈 눈’으로 관찰하는 사람들 또한 목격했노라고 가슴 아파한다.

이제 혐오 발언의 규제를 위해서는 차별금지법의 제정과 같은 법적인 규제 방안을 강구해 보아야 한다. 유엔인권이사회 의장국인 우리나라가 아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이 반드시 제정되도록 법률가들도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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